1. 선배의 전화
어제 저녁 40대 중반인 선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고라를 보다가 눈물이 났다고, 이 싸움이 어떻게 될 것인지 답답하시다며, 전화를 하셨더군요. 한참 통화를 했습니다. 선배가 이제 와 강성이 된 자신의 심정을 담담히 고백하시더군요. 가장 큰 것은 도저히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 줄 수 없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80년대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답니다. 하긴 이 선배 대학생때는 제법 날라리셨지요. 집도 부유했고, 그 엄혹한 시절에 자가용으로 등교하시던 부르조아셨으니까요. 하루가 지나면 또 한 명의 투사가 생깁니다. 또 한 명이 미안해 하고, 또 한 명이 결의를 불태우고, 또 한 명이 우비를 챙기겠지요.
2. 저는 여전히 좌빨입니다.
우리 사회는 좀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고 믿고 있고, 보수와 진보의 구별은 민주당과 민노당 쯤에 있다고 생각하지요. 아다시피 민주당은 확실히 보수 정당입니다. 신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FTA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에게 보수와 진보는 영 다른 곳에 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민족이나 국가주의자이고,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의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지요. 민족의 가치보다는 반공이나 친민가 더 소중한 가치이고, 가족을 지키는 정책보다는 기업을 위한 정책이 더 많은 편입니다. 그들이 보수의 진정한 가치를 상당부분 훼손하고 있는 것이지요.
3. 이제 화염병 처벌법의 공소시효가 끝났겠네요.
제가 던진 화염병만 몇 천개는 될테지요. 학교 투쟁국에서 정책 및 전술을 생산하기도 했구요. 대규모 가투나 진입 택(tictac에서 뒷글자만 딴 은어지요.)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시내 도로 점거시 인도에서 빨간장갑이든 노란 모자든 쓰고 동 뜨는(시민인듯 인도에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처음 구호를 외치거나 유인물을 뿌리며 명동이나 종로의 차도로 뛰어드는) 역할도 가끔했습니다. 당시는 분명히 도심 유격전이었고, 시내의 차도가 인도보다 더 익숙했고, 편안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외치고, 싸워도 세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좌절에 빠지기도 했었구요. 군에 있던 92,93년이 더 그랬습니다. 많은 후배들이 무기력에 빠졌습니다. 87년의 승리와 91년의 분신정국을 통해 세상이 바뀔 것 같은 희망만 맛보고, 92,93년의 선거에서 처절한 좌절을 느꼈었지요.
여하튼 전대협의 깃발아래, 또는 서총련의 깃발을 들고 시내를 뛰어다닐 때, 시작은 언제나, 최소한의 '자위권'이고, 본대를 지키기 위한 '사수조'였습니다. 본대를 지켜야했고, 가두의 선전전이 진행될 시간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어느 언론도 우리의 '주장'을 담아 보도하지 않았었고, 화염병과 최루탄을 들게 된 과정 역시 알아 보려 하지 않았었지요.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티비에 나오는 아들은 꼭 알아보신 어머니께서는 '꼭 네가 할 필요는 없지 않니'라고 울먹이셨구요. SY-44의 직격 최루탄이 귀 옆을 스칠 때면,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사과탄 파편에 찢긴 턱을 수건 물고, 마취없이 꿰매면서는 정권에 대한 분노를 더 키우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다리에는 그 시절 방패에 찢겨 내 정강이 뼈를 보던 날의 흉터가 남아 있군요.
4. 투쟁은 그닥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요.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좀 더 우리의 대오가 강해졌으면 바랄테고, 뭔가 집중되고, 뭔가 순간순간의 승리를 맛보고 싶게 됩니다. 저 역시 수많은 정세토론을 하고, 사상학습을 한 뒤에, 오늘의 전술을 설명하고, 전투조를 교양하면서 전경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수없이 되내였죠. 그러나 전선에서 전투조를 지휘하면서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우리의 길을 막는 너희들은 적이 되고, 그네들의 화이바에 작열하는 화염병에 은근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쇠파이프 끝에 밀려오는 찌릿한 감촉도 나쁘지 않구요.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이미 너무도 재기발랄한 투쟁을 경험했고, 이 훨씬 강력하고 대중적인 시위를 굳이 다시 본대와 전투조로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 더 조직되고, 조금 더 무장하면 경찰저지선도 얼마든지 뚫고, 청와대도 얼마든지 진격할 수 있겠지요. 그닥 어렵지 않습니다. 대책위에서 결사조 50명만 조직해도 저지선 배후 공격은 충분히 할 수 있고, 단위 조직 천명씩만 비밀 지켜서 대여섯군데 동시다발 도심집회 조직해도, 서울 시내 자체를 마비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승리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청와대를 가도, 광장의 수십만이 같이 갈 때 의미가 있습니다. 유모차도 가고, 예비군도 가고, 할머니도 가고, 초등학생도 가야 의미가 있겠지요. 짱돌에 머리가 찢어지고, 곤봉에 맞고, 군홧발에 채여도 화염병 안들고, 쇠파이프 안들고 묵묵히 나가고, 저항해 나가야겠지요.